<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순교>
12월 28일은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입니다.
‘죄 없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고 해서
죄가 있는 순교자들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기들은 아기라는 이유만으로도 죄가 없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죄 없는’이라는 말은 아기라는 것을 강조하는 수식어입니다.
헤로데는 예수님의 탄생에 왕권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는 식민지였으면서도
자기 왕권에 강하게 집착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아예 싹을 잘라버리려고
예수님의 탄생 시점을 기준으로 베들레헴의 아기들을 모두 죽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인구와 베들레헴의 인구를 생각하면
죽은 아기들은 그리 많은 수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여간에 아기들은 예수님 때문에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아기들이 예수님 ‘대신에’ 죽은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살리려고 대신 죽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군인들이 예수님을 찾지 못하자 분풀이로 다른 아기들을 죽인 것도 아닙니다.
군인들은 아기들 하나하나를 예수님이라고 생각하며 죽였습니다.
그들은 돌아가서 임무를 완수했다고 보고했을 것입니다.
군인들은 누가 예수님인지 모르기 때문에 아기들을 다 죽였습니다.
그래서 아기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죽었습니다.
아기들은 예수님 ‘대신에’ 죽은 것이 아니라 사실상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미리 동참한 것입니다.
순교란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입니다.
순교란 예수님의 십자가를 뒤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 하나.
아기들이 자기 의지로 선택한 것도 아니고,
예수님을 믿은 것도 아닌데, 그것도 순교라고 할 수 있나?
바로 그 점이 특별합니다.
아기들이 예수님을 믿은 것은 아닙니다.
자기 의지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죽음에 동참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억울한 죽음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순교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의지로 결정한 일이 아니었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죽었고, 예수님과 함께 죽었기 때문에,
그 아기들은 순교자의 영예를 얻게 된 것입니다.
지금 그 아기들은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영생을 누리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아기들의 죽음이 순교가 되었다는 것보다도
그 아기들을 죽인 어른들의 범죄를 더 주목해야 합니다.
이제 갓 태어난 아기가 자기 왕권을 위협한다고 생각한 헤로데,
얼마나 자기 왕권에 자신이 없으면 살인을 했을까,
아기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충실하게 따른 군인들,
그저 군인이기 때문에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그 군인들도 살인자입니다.
누가 생각해도 아기들을 죽이는 것을 정당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명령은 거부했어야 합니다.
문득 1980년도의 광주에서의 살인이 떠오릅니다.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 임신부에게,
헌혈하고 나오는 여고생에게,
저수지에서 멱을 감는 어린이들에게 총을 쏘는 것이
제 정신으로 할 일입니까?
그것은 절대로 군인의 임무 수행이 아니라 그냥 살인입니다.
그때 죽은 시민들은 죄 없는 아기들처럼 민주주의의 ‘순교자들’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저 순교자로 공경하는 것으로 그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살인을 막아야 합니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들, 살인들,
아무 생각 없는 군인들, 살인자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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